무음의 연주: 플롯모음집
남아버린 인생의 편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쁘게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 밀물처럼 각자에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무뎌져 버린 어떤 감각들이 파도처럼 부서지며 밀려올 때, 그 때의 감각들은 다시 생생한 마음이 되어 다가온다.
김꽃님의 그림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 한 켠에 남아 있는 어떤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삶의 편린들이다. 특히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던 ‘보내줌’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관한 서사는 누구와라도 보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인데 그만큼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가 김꽃님의 그림에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김꽃님의 작품은 따뜻함이나 차가움이라는 어떤 감정을 동반하며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대신 마치 칼로 자른 단면처럼 화면의 위에 그 그림들을 날카로운 방식으로 얹혀놓는다. 어떤 상황과 감각을 톤 다운된 색들과 함께 그 단면 위에 날카롭게 쌓아두는 것 같은 플랫하고 편편한 김꽃님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는 내가 가졌던, 혹은 누군가 가졌던 그 감각과 기억 자체의 면들이 모두 잘려지고 한 단면만 남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삭제되거나 편집된 배경의 플랫함에서 더욱 나타나게 되는데, 마치 꾸깃하게 담아놓았던 개인의 기억들을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매끄럽고 단순하게 펴주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김꽃님의 작품은 방금 난 상처가 아니라 그 상처에 딱지가 앉은, 조금은 시간이 흐른 뒤의 기억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작가의 작업 초반, 20대의 눈으로 그린 < 가리다 > 시리즈는 20대 여성들이 곤란하거나 불안한 상황에서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며 감정을 숨기는 모습을 포착하고 그려냈다. 사선으로 떨어지며 어디를 쳐다보는지 정확치 않은 인물의 눈, 자신감보다는 그 때의 상황들을 잠시 회피하고자 하는 손짓들과 머리카락의 움직임들이 각각의 화면에 잘 포착되어 있다. 80 피스로 이루어진 < 가리다 > 시리즈에 담긴 순간의 표정들은 각기 다른 제스처들과 함께 포착된 미세하게 다른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연작의 구성, 각 순간들을 포착하여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게 담아내는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작가 작업에서도 드러나는 중요한 작업적 특징이다.
이후 2020년도 즈음부터 변화된 작품들을 보면 분할된 화면 안에 < 가리다 >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플랫한 상황의 포착을 더욱 더 플랫하게 보여주는 경향을 선보인다. 특히 작가는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즈음부터 선보인 분할된 화면 안에 존재하는 내러티브들은 한 화면 안에 구성되어 이야기를 만들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 순간에 포커싱되어 있는 모습들, 줌 되어 있는 모습들로 이어지는 플롯의 모음인 김꽃님의 작품은 한 번 정제된 듯한 작가의 감정들을 기록해나간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잔잔한 감각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김꽃님의 작품에 보이는 채도가 낮은 작업들은 과슈를 사용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마를 때 색이 진해지고 윤기가 없으며 선명한 색감으로 나타나는 과슈는 ‘불투명 수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재료이다. 이러한 과슈의 특징은 김꽃님의 작품 특성과 맞닿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현재의 기억’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물기와 축축함이 날아갈수록, 기억과 추억은 마음 속에서 빛이 바랜 듯 하지만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흰색을 섞어서 채도를 낮춘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 빛바랜 잔존감은 도드라진다. 그리고 이 재료는 작가가 평소 표현하고자 하는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준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피천득, 『인연』, 「플루트 플레이어」, p.56
피천득님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글, 「플루트 플레이어」에는 ‘무음(無音)의 연주’라는 단어가 나온다. 오케스트라 안에 있을 때 모든 연주자는 매 순간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쉬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작가는 그 순간 연주자들이 ‘무음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 연주장에 있는 공기의 흐름, 객석의 감정들과 분위기가 함께 연주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우리의 감각들, 음이 없더라도 들리지 않아도 울리는 그 순간의 감정들과 감각들을 담담하게 연주하여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김꽃님의 작품에서 발견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이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기억의 편린들이 작가의 작품에서 오늘도 무음으로 연주되고 있다.
남아버린 인생의 편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쁘게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 밀물처럼 각자에게 다가오는 때가 있다. 무뎌져 버린 어떤 감각들이 파도처럼 부서지며 밀려올 때, 그 때의 감각들은 다시 생생한 마음이 되어 다가온다.
김꽃님의 그림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 한 켠에 남아 있는 어떤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삶의 편린들이다. 특히 작가의 작품에 등장했던 ‘보내줌’에 대한 이야기와 그에 관한 서사는 누구와라도 보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인데 그만큼 어떤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가 김꽃님의 그림에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김꽃님의 작품은 따뜻함이나 차가움이라는 어떤 감정을 동반하며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대신 마치 칼로 자른 단면처럼 화면의 위에 그 그림들을 날카로운 방식으로 얹혀놓는다. 어떤 상황과 감각을 톤 다운된 색들과 함께 그 단면 위에 날카롭게 쌓아두는 것 같은 플랫하고 편편한 김꽃님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는 내가 가졌던, 혹은 누군가 가졌던 그 감각과 기억 자체의 면들이 모두 잘려지고 한 단면만 남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이러한 부분은 삭제되거나 편집된 배경의 플랫함에서 더욱 나타나게 되는데, 마치 꾸깃하게 담아놓았던 개인의 기억들을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매끄럽고 단순하게 펴주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김꽃님의 작품은 방금 난 상처가 아니라 그 상처에 딱지가 앉은, 조금은 시간이 흐른 뒤의 기억들을 보여주는 듯 하다.
작가의 작업 초반, 20대의 눈으로 그린 < 가리다 > 시리즈는 20대 여성들이 곤란하거나 불안한 상황에서 머리카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며 감정을 숨기는 모습을 포착하고 그려냈다. 사선으로 떨어지며 어디를 쳐다보는지 정확치 않은 인물의 눈, 자신감보다는 그 때의 상황들을 잠시 회피하고자 하는 손짓들과 머리카락의 움직임들이 각각의 화면에 잘 포착되어 있다. 80 피스로 이루어진 < 가리다 > 시리즈에 담긴 순간의 표정들은 각기 다른 제스처들과 함께 포착된 미세하게 다른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연작의 구성, 각 순간들을 포착하여 담백하면서도 깔끔하게 담아내는 이야기들은 앞으로의 작가 작업에서도 드러나는 중요한 작업적 특징이다.
이후 2020년도 즈음부터 변화된 작품들을 보면 분할된 화면 안에 < 가리다 >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플랫한 상황의 포착을 더욱 더 플랫하게 보여주는 경향을 선보인다. 특히 작가는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즈음부터 선보인 분할된 화면 안에 존재하는 내러티브들은 한 화면 안에 구성되어 이야기를 만들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그 순간에 포커싱되어 있는 모습들, 줌 되어 있는 모습들로 이어지는 플롯의 모음인 김꽃님의 작품은 한 번 정제된 듯한 작가의 감정들을 기록해나간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러한 잔잔한 감각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김꽃님의 작품에 보이는 채도가 낮은 작업들은 과슈를 사용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마를 때 색이 진해지고 윤기가 없으며 선명한 색감으로 나타나는 과슈는 ‘불투명 수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한 재료이다. 이러한 과슈의 특징은 김꽃님의 작품 특성과 맞닿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현재의 기억’이 가지고 있는 어떤 물기와 축축함이 날아갈수록, 기억과 추억은 마음 속에서 빛이 바랜 듯 하지만 더욱 선명해지기도 한다. 흰색을 섞어서 채도를 낮춘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 빛바랜 잔존감은 도드라진다. 그리고 이 재료는 작가가 평소 표현하고자 하는 슬픔과 외로움의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준다.
“자기의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이 얼마 아니 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독주하는 부분이 없다 하더라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다.
남의 파트가 연주되는 동안 기다리고 있는 것도 무음無音의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피천득, 『인연』, 「플루트 플레이어」, p.56
피천득님의 수필, 『인연』에 나오는 글, 「플루트 플레이어」에는 ‘무음(無音)의 연주’라는 단어가 나온다. 오케스트라 안에 있을 때 모든 연주자는 매 순간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쉬어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작가는 그 순간 연주자들이 ‘무음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 연주장에 있는 공기의 흐름, 객석의 감정들과 분위기가 함께 연주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우리의 감각들, 음이 없더라도 들리지 않아도 울리는 그 순간의 감정들과 감각들을 담담하게 연주하여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김꽃님의 작품에서 발견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이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기억의 편린들이 작가의 작품에서 오늘도 무음으로 연주되고 있다.
글. 박주원